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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봉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탁구 혼성복식종목의 세계패권을 쟁취하였다.
1994년부터 4.25체육단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2003년에는 국가종합팀에 선발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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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은 1970년대 세계탁구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로력영웅, 인민체육인 박영순을 선발하여 그가 세계탁구계의 정점에 오르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1950년대 조선인민군체육단 탁구선수로 활약하다가 1960년부터 2. 8체육단 (당시) 탁구감독으로 사업한 그는 삭주의 단발머리소녀 박영순을 선발하여 그가 제33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쟁취하도록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국가종합팀 녀자탁구책임감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탁구협회 서기장으로 사업하면서 1980년대와 1990년대 우리 나라 탁구선수들이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특출한 성과를 이룩하도록 이끌었으며 그 공로로 공훈체육인, 인민체육인의 명예칭호를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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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력기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리성희는 선수생활 전기간 3중아시아선수권, 2중세계선수권을 쟁취하고 6차에 걸쳐 세계 새 기록을 세웠으며 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하여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다.
평안북도 동림군에서 태여나 10대에 력기를 시작한 리성희는 처음으로 참가한 국내경기대회에서부터 2개 세부종목과 종합에서 세계 새 기록을 세워 전문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후 제12차 아시아녀자력기선수권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58㎏급경기에서 1 등 을 쟁취하였으며 1998년에 진행된 제13차 아시아경기대회 녀자력기 58㎏급 추켜올리기경기에서 세계 새 기록을, 1999년 11월에 진행된 제13차 세계녀자력기선수권대회 58㎏급 추켜올리기경기에서 또다시 세계 새 기록을 세우고 종합 1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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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이름난 기계체조선수인 로력영웅 리세광선수가 세계기계체조계에 《리세광동작》으로 명명된 가장 높은 난도의 기술동작을 완성하여 세계패권을 쟁취하기까지에는 감독인 신명수의 헌신적인 노력이 깃들어있다.
1980년대에 2.8체육단 (당시) 기계체조선수로 활약하면서 국내경기들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1989년에 국제경기에 참가하여 마루운동과 륜운동에서 1위를 쟁취하고 제16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 륜운동에서 1위를 한것을 비롯하여 여러 국제경기들에서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신명수는 1999년부터 4.25체육단 체조감독으로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리세광선수의 훈련과 경기지도를 맡게 되였을 때에는 기계체조전문가들과 집체적지혜를 합쳐가며 높은 난도의 기술동작을 창작하여 리세광선수가 습득하도록 하였다.
불과 몇초밖에 안되는 동작이였지만 리세광선수가 국제 경기무대에서 이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하기까지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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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림은 제1차 세계군대종합체육경기대회(당시)에 참가하여 물에뛰여들기 녀자 1m탄성판경기에서 우승하고 공훈체육인칭호를 수여받았다.
몇년후 조선체육대학을 졸업하고4.25체육단 물에뛰여들기 감독이 된 신정림이 맡은 첫 선수는 김국향이였다.
그는 금메달쟁취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늘 선수와 함께 있으면서 김국향의 체질적특성과 성격적특질을 고려하여 가장 효과적인 훈련수단과 방법을 탐구활용하였으며 그 과정에 국향은 국내패권자가 되였고 국가종합팀에 망라되게 되였다.
마침내 김국향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제16차 국제수영련맹 세계선수권대회 물에뛰여들기 녀자 10m고정판경기에서 단연 우승하여 이 종목에서 우리 나라의 첫 세계선수권보유자가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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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평양의 평범한 철도로동자의 딸로 태여난 설경은 2001년부터 평양기계대학체육단(당시)에서 유술을 시작하였다.
그가 처음으로 참가한 국제경기는 2009년에 진행된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였다. 그러나 이 경기대회 유술 녀자 70㎏급경기에 참가하였던 그는 순위권에 입선하지 못하였다.
설경은 실패에서 조금도 맥을 놓지 않고 피타게 훈련하여 2010년에 진행된 제16차 아시아경기대회 유술 녀자 70㎏급경기에서 2위를 하였으며 2012년에 진행된 세계컵녀자유술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을 쟁취하였다. 그후 아시아유술선수권대회들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설경은 2013년에 진행된 세계유술선수권대회 녀자 78㎏급 경기에 출전하여 맞다드는 선수들을 통쾌하게 이기고 세계선수권을 쟁취하였다.
자랑찬 경기성과로 주체조선의 존엄과 영예를 떨친 설경은 인민체육인칭호를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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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군 길주인민학교(당시) 축구소조에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길선희는 속도가 빠르고 공다루기가 좋아 인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몇해후에는 길주군 청소년체육학교에서 축구를 련마하게 되였다.
그후 길선희는 리명수체육단 녀자축구선수가 되였다.
동작이 민첩하고 경기시야가 넓은 그는 1:1돌파를 특기로 하는 공격수로서 맹활약을 하여 팀의 승리에 이바지하였다.
10대에 벌써 국가종합팀에 망라된 길선희는 여러 국제경기들에서 우리 팀이 순위권에 입선하는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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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성철이 국가종합팀 녀자유술책임감독으로 사업한 10여년간 계순희, 안금애, 홍옥성, 박명희, 림윤희선수들을 비롯하여 국제경기들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둔 우수한 유술선수들이 배출되였다.
그는 1975년부터 평양체육단 유술선수로 활약하면서 여러 국내경기들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그후 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체육단 유술감독으로 사업하던 리성철은 1999년에 진행된 제2차 세계군대종합체육경기대회(당시) 유술 녀자 57㎏급경기에서 리명화선수가 우승을 쟁취하도록 이끌었으며 그 공로로 하여 공훈체육인칭호를 수여받았다.
리성철은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 유술 녀자 57㎏급경기에 출전한 홍옥성선수가 결승경기에서 금메달을 쟁취한데 이어 제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와 제3차 세계군대종합체육경기대회에서 또다시 우승의 영예를 쟁취하도록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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